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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김소엽

[역경의 열매] 김소엽 (24) 눈물과 기도로 키운 딸 “믿음의 사위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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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이가 미국 남가주대학에서 석사과정을 할 때 홍남표 목사님이 인도하는 성경공부 모임에 나가고 있었다. 목사님은 석·박사 코스 학생들을 대상으로 매주 금요일 오후 성경을 가르치며 예배를 인도하셨다. 내가 그 모임 강사로 초청을 받았다. 50∼60명의 학생들이 준비찬송을 하고 있었다. 찬양을 리드하는 한 남학생이 내가 작사한 ‘부서져야 하리’란 곡을 기타로 치며 찬양했다. 그 학생에 대한 인상이 좋았다.

나는 서윤이를 낳고부터 늘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목사님 장로님 총장님 교수님에서부터 재벌가 자제에 이르기까지 참 많은 곳에서 혼담이 오갔지만 서윤이는 단호하게 ‘노’ 했다. 믿음이 없다는 게 이유였다. 오직 믿음만 보는 딸의 신앙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딸은 언제나 아빠처럼 신앙 좋고 인격적으로 성숙한 사람을 만나 자기를 신앙적으로 이끌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런 아이가 그때 기타를 치던 청년 신모세를 배우자 감으로 엄마에게 소개한 것이다. 결국 나는 딸을 믿고 또 딸의 지혜로움을 잘 알기에 의견을 존중해 결혼을 허락했다. 서윤이는 2003년 정진경 목사님의 주례로 신촌성결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남편과 교회봉사를 함께 했던 장로님들이 나오셔서 중창을 불러주셨고 두 사람을 축복해 주셨다. 오랜 시간 잊지 않고 우정을 간직해 준 그분들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러나 결혼만 시키면 책임이 끝날 줄 알았는데…. 믿음 좋은 신랑감만 달라고 기도했지, 돈 많은 신랑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은 게 후회되기도 했다. IMF가 세계를 강타하자 미시간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끝낸 사위 모세는 설 자리가 없었다. 기계공학을 전공한 사위에게 자동차, 항공사 등이 망해가는 디트로이트시는 절망적이었다. 게다가 모세는 “어머니 저는 기계를 대하고 평생 산다고 생각하니 정말 끔찍해요”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정말 큰일났다 싶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도 경쟁사회에서 헤쳐 나가기 힘든데, 하물며 하기 싫은 일을 평생 한다면 무슨 행복과 성과가 있겠는가. “그러면 자네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자네 꿈이 무엇인가?”

모세는 대학시절 의료선교단과 함께 동남아 일대를 돌며 선교활동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 꿈은 의사가 되어 의료선교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나는 서슴지 않고 “이 세상에는 길이 없는 것이 아니고 뜻이 없는 거라네. 열심히 기도하고 간구하면 주님 안에서의 선한 꿈이 반드시 이뤄질 거야”라고 격려했다.

이후 사위를 위해 집중적으로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응답해 주셨다. 사돈인 신석균 목사님과 사모님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된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지금도 손녀 록이의 친 할아버지와 외증조할아버지가 목사님이라는 것이 그렇게도 감사할 수가 없다. 사위는 지금 의대를 졸업하고 치과의사로 일하고 있다. 또 아빠의 뒤를 잇겠다며 15세에 홀로 미국 유학을 떠났던 딸은 유학 생활의 어려움을 신앙으로 극복하고 마침내 커뮤니케이션과 심리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시간대 연구 교수로 재직 중이다. 딸 네 부부는 두 달 된 예쁜 손녀 신록(Loc Lily Shin)과 함께 내 칠순 잔치를 치르기 위해 올 초 미국에서 나왔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눈물의 간구를 모두 응답해주셨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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