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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김소엽

[역경의 열매] 김소엽 (20) 주님께 받은 새 소명 “문화선교 일꾼이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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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KBS 라디오 프로그램 ‘밤과 인생 이야기’를 2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진행하고 방송국을 나서면 새벽 1시. 여의도의 밤공기는 싸늘했다. 근처 포장마차에서 따뜻한 우동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고 급히 마포 집으로 와서 밀린 원고를 쓰고 나면 훤하게 동이 터오른다. 일터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았다.

92년에는 기독교방송 ‘새롭게 하소서’도 맡게 됐다. 고은아 권사가 개인 사정으로 진행을 그만두게 되면서 방송국에서 진행을 맡아 달라고 연락이 온 것이다. 첫 시집의 인세가 거의 줄어들 때가 되니 하나님은 방송 일을 통해 생활을 이어가게 하셨다.

나는 당시 극동방송과 기독교방송에서 간증 칼럼을 진행하면서 믿음의 형제·자매를 많이 만났다. 그들이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자리에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왔는지, 또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 고통과 고난의 자리에서 어떻게 일어서게 됐는지를 볼 수 있었다.

사업은 파산하고 자녀들마저 잃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다시 소망을 갖고 재기한 사람들을 하나님은 만나게 하셨다. 건강을 잃은 채 처절하고 참혹한 상태에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난 사람과의 만남도 이끄셨다. 그들의 참담하고 쓰라린 상황과 비교하면 나의 아픔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눈을 씻고 세상을 다시 보니 나보다 처절하고 어려운 사람이 의외로 많았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 주변에 이렇게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았단 말인가. 나는 그동안 도대체 무엇을 보며 살아왔단 말인가.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와 같은 미숙아였구나.’ 이제까지 저 세상으로만 보였던 죽음 너머의 세계, 그 피안의 영적 세계까지도 하나로 통합되는 새로운 하나님 질서의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무렵 정진경 목사님은 나에게 끊임없이 문화선교의 중요성을 언급하셨다. “앞으로의 세상은 문화가 지배할 것입니다. 기독문화가 바로 서야 청소년들의 정서가 바로 잡히고 온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것입니다. 김 권사가 총대를 메 주세요.”

목사님은 수차례 말씀하셨지만 나로선 생각해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 목사님께서 나를 보자고 하시더니 구체적인 방안까지 마련해 책임을 맡기셨다. 구상은 원대했다. 우선 내가 글 쓰는 사람이니 문인선교회를 창립하고, 차츰 미술 음악 무용 연극 사진 건축 국악 방송 연예 등 각 예술 분야에서 기독문화를 지향하는 ‘기독문화예술총연합회’를 설립하는 것이다. 목사님은 이 단체를 통해 올바른 기독문화 예술을 창달하고 정착시키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씀하셨다.

마침내 92년 한국기독교문인선교회를 비롯, 미술 음악 무용 등 부문별로 순차를 두고 12개의 기독예술단체가 창립됐다. 그리고 94년 김삼환 목사님을 이사장으로 총재에 곽선희 목사님, 고문에 정진경 목사님을 모시고 ‘한국기독교문화예술총연합회’를 창립했다.

21세기를 사는 요즘, 급변하는 문화의 시대를 맞고 보니 당시 시대를 꿰뚫어 보신 정 목사님의 영적 혜안이 존경스럽다. 지금 생각하면 슬픔에 빠진 나에게 사명을 주셔서 하나님의 일을 시키심으로 슬픔에서 나를 구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그분의 깊은 뜻을 이제 와서야 헤아리게 된다. 정 목사님은 나의 영적 아버지였고 나를 딸처럼 사랑해 주셨던 잊을 수 없는 분이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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