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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주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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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연예인들 사이에 성경공부 붐 일어났어요” [역경의 열매] 주선애 (25) “연예인들 사이에 성경공부 붐 일어났어요” 새벽 2~3시에 귀가하는 연예인 많아… 하용조 전도사, 낮에는 학교 생활 밤에는 성경 공부 인도로 1인 2역 입력 : 2019-07-12 00:02 주선애 장로회신학대 명예교수(가운데)가 1980년대 초 하용조 온누리교회 목사(오른쪽)와 함께 영국 런던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1970년대 중반쯤이었다. 내 연구실에 자주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당시 장로회신학대 신대원 학생이었던 하용조 김지철 전도사였다. 두 사람은 아침마다 조용히 성경공부를 같이 하고 싶은데 장소가 변변치 않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출근하던 나는 학교까지 1시간 30분이 걸렸다. 학교 측이 내 수업을 대부분 2교시부터 시작하도록 배려해 준 이유다. ..
(24) 은퇴 후 어려운 교회 도우려 나이 육십에 운전면허 [역경의 열매] 주선애 (24) 은퇴 후 어려운 교회 도우려 나이 육십에 운전면허 시골 마을 조그만 교회 재정 없어 사경회·교사강습 대부분 못 받아… 오랜 꿈 실행하려 용기 내 운전 입력 : 2019-07-11 00:07 주선애 장로회신학대 명예교수가 1984년 8월 한국교회 선교100주년기념 교육대회에서 강의하고 있다. 때때로 대학원장 회의에 참가해 보면 대학원장들은 기사가 운전하는 비싼 차를 타고 왔다. 나는 대중교통을 타거나 이따금 택시를 이용했다. 비싼 차를 타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게도 운전 기술이 필요해보였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이 60에 처음 운전을 배우기로 했다. 사실 운전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건 오래됐다. 40대부터 은퇴 후에 대한 꿈이 있었다. 기차를 타고 여행할 때 창밖으로 시골 마..
(23) 중년여성 해방구 ‘교회여성지도자교육원’ 열어 [역경의 열매] 주선애 (23) 중년여성 해방구 ‘교회여성지도자교육원’ 열어 젊은 시절 가족을 위해 헌신만 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로… 이들에게 꿈과 믿음의 동력 얻게 해 입력 : 2019-07-10 00:06 주선애 장로회신학대 명예교수(맨 뒷줄)가 1979년 여성지도자교육원 수업 중 ‘인간관계 훈련’ 강의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 50대 여성과 대화를 나누다 가슴 사무칠 얘길 들었다. “선생님, 대학 다닐 땐 꿈이 참 많았는데 결혼하고 애들 키워 대학 보내고 나니 남편은 일에 빠져 밤중에 들어오고 아이들 역시 자기 생활에 시달리고 저는 혼자 종일 집에 앉아 있기만 해요. 이렇게 허송세월해도 될까요.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일까요.” (포털사이트에서 영상이 노출되지 않는 경우..
(22) 오랜 남존여비 전통에… 여전도사 무용론까지 [역경의 열매] 주선애 (22) 오랜 남존여비 전통에… 여전도사 무용론까지 ‘장로교 여성사’ 집필 과정 통해 나라·민족 교회 위해 크게 쓰임 믿어 입력 : 2019-07-09 00:05 주선애 장로회신학대 명예교수가 1978년 열린 ‘장로교 여성사 출판기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여전도사 양성과는 초급대학 같았다. 하나님의 일에 소명을 받은 사람으로서 인격에 결함이 없는 사람들을 선택해 교육하기로 했다. 이들을 가르치면서 우리나라에 여전도사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역할이 본래 무엇이었는지를 조사해 봤다. 오랜 남존여비 전통 아래 여성이 집 밖에서 사람들에게 전도하거나 가르친다는 건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맏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처럼 딸을 종처럼 여기거나 가난하면 팔아먹을 수 있는..
(21) 기독교 교육은 학문이 아닌 체험하면서 배워야 [역경의 열매] 주선애 (21) 기독교 교육은 학문이 아닌 체험하면서 배워야 올바른 가르침의 효과 얻기 위해 실천하면서 가르치고자 노력… 삶의 현장서 복음 가치 찾아야 입력 : 2019-07-08 00:07 주선애 장로회신학대 명예교수(오른쪽 첫 번째)가 1960년 서울 마포구 망원동 자택에서 여성지도반 및 제3세계국가 학생들과 교제를 나누고 있다. ‘분단된 내 민족을 어떻게 구원하고 한국교회를 어떻게 섬길 것인가.’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은 일생의 과제다. 나는 신앙교육을 통해 이 과제를 조금이라도 이뤄가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게 내 소명인 것이다. 교육은 우리가 처한 사회 안에서 이뤄지는 하나의 사회화 과정이다. 단순히 서구 사회의 교육을 모방하거나 이식할 수만은 없다. 그러므로 교육에는 교육 현장에 ..
(20) 35세에 여전도회 회장 맡아… 시대 이끌 사명 [역경의 열매] 주선애 (20) 35세에 여전도회 회장 맡아… 시대 이끌 사명 복음주의와 교회일치운동의 분열… 여성들이 주관해 화합기도회 열고 선도적으로 평화유지 해주길 호소 입력 : 2019-07-05 00:13 주선애 장로회신학대 명예교수(앞 줄 왼쪽 네 번째)가 1959년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임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미국 장로교 선교부 장학생 신분으로 장로교 여성대회인 풀듀대회에 참석할 기회를 얻었다. 여성 대표들이 전국적으로 5000여명이 모여 향후 3년간 활동 방향을 결정하는 중대한 회의였다. 한국 여전도회에선 정신여학교 교장선생님이신 김필례 회장께서 17대부터 20대까지 여전도회 전국연합회를 이끌어 오셨다. 미국 선교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던 선생님과 풀듀대회에 동행했다. 이 대회..
(19) 험난한 기독교교육과 여성교육… 두 마리 토끼 다잡아 [역경의 열매] 주선애 (19) 험난한 기독교교육과 여성교육… 두 마리 토끼 다잡아 한국선 생소한 기독교교육학 정체성과 교육의 가치 홍보에 힘써… 여학생 모집 위해 등록금 절반만 받아 입력 : 2019-07-04 00:05 주선애 장로회신학대 명예교수(앞 줄 왼쪽 세 번째)가 1961년 숭실대 기독교교육학과 학생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뉴욕성서신학교를 졸업한 나는 1958년 8월 귀국길에 올랐다. 미국에 갈 때는 배로 갔지만 돌아올 때는 선교부에서 항공권을 마련해줘 비행기를 타고 왔다. 여의도비행장에 내렸는데 당시만 해도 여의도는 정말 시골이었다. 비행장엔 얼굴에 세월의 흔적이 드리운 어머니께서 마중을 나오셨다. 사람들은 나를 우리나라 기독교교육학과의 기초를 닦은 인물로 소개하곤 한다. 지금 생각하면 어..
(18) “귀국 후 전 세계 복음 전할 선교사 양육” 포부 [역경의 열매] 주선애 (18) “귀국 후 전 세계 복음 전할 선교사 양육” 포부 석사논문 준비 중 남미 선교여행, 잘사는 서양인이 하는 전도보다 비슷한 처지 동양인 말이 더 와닿아 입력 : 2019-07-03 00:05 주선애 장신대 명예교수(앞줄 왼쪽 두 번째)가 1958년 미국 장로교 에큐메니컬 팀과 함께 과테말라 선교여행에 참여했다. 나의 석사논문은 나를 유학시켜 준 선교부의 요청대로 ‘성경 중심의 기독교대학 교육과정’에 대한 것이었다. 한창 논문을 쓸 때는 식당에 가는 시간도 아까워 우유나 빵으로 끼니를 때우면서 제출할 날짜에 맞춰 끝내기 위해 조급한 마음으로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선교본부에서 전화가 왔다. 에큐메니컬 팀 직원이었다. 그는 과테말라와 멕시코에 한 달간 단기여행을 가도록 준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