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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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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 잔 차나 한잔 정호승 입을 없애고 차나 한잔 들어라눈을 없애고찻잔에서 우러난 작은 새 한마리하늘 높이 날아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라지금까지 곡우를 몇십 년 지나는 동안찻잎 한번 따본 적 없고지금까지 우전을 몇천 년 만드는 동안찻물 한번 끓여본 적 없으니손을 없애고 외로운 차나 한잔 들어라발을 없애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첫눈 내리기를 기다려라마침내 귀를 없애고지상에 내리는 마지막 첫눈 소리를 듣다가홀로 잠들어라-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중에서
나는 왜 시를 쓰는가 나는 왜 시를 쓰는가- 정호승 유난히 추운 겨울이었다. 한파가 몰아쳐 체감온도가 영하 20도에 가까워진 날, 점심을 먹으려고 추어탕 집을 찾았다. 그 추어탕 집은 출입문 앞에 물이 가득 든 커다란 고무함지에 살아 있는 미꾸라지들을 수십 마리 넣어 오가는 손님들이 볼 수 있도록 해놓았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그곳에 함지가 있었다.나는 무심코 출입문을 열려고 하다가 함지를 보고 깜짝놀라 발걸음을 멈추었다. 얼음이 꽝꽝 얼어 있는 고무함지속에 미꾸라지들이 그대로 얼어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도 얼어붙기 직전까지 살아 움직이던 그대로 다양했다. 어떤 미꾸라지는 몸을 똥그랗게 오므려 이응자 같고, 또 어떤 미꾸라지는 기역자나 니은자 같았다. 이응자를 이루고 있는 미꾸라지 옆에 세로로 길게 몸을 편 미꾸라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