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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홍덕선

[역경의 열매] 홍덕선 <8> “성경 말씀만 쓰겠다”… 본격 기독서예가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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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덕선 장로(앞줄 오른쪽 세 번째)가 1984년 5월 ‘제3회 춘파 홍덕선 서예 개인전’을 열고 지인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978년부터 14년간 한국기독교미술인선교협회에 몸담으면서 벌인 갖가지 활동은 정말 보람찬 일이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달란트를 세상을 위해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원이 150명이 넘었는데, 나는 단체에 이름만 걸쳐놓는 수준이 아니었다. 협회가 하는 일이라면 항상 발 벗고 나섰다.

특히 85년 서울 덕수궁 석조전에서 열었던 전시회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다. 85년은 이 땅에 복음이 전파된 지 100년을 맞아 한국교회가 다채로운 기념사업을 벌이던 해였다. 협회에서도 이를 기념해 ‘한국교회 100주년 기념 국제미술전’을 개최했다. 하나님이 이 땅에 주신 축복에 감사하며 미술을 통해 복음 전파의 사명을 되새기는 행사였다. 당시 나는 협회 총무를 맡아 실무를 총괄했다.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명색이 국제미술전인 만큼 전시장에는 6개국 기독 작가들의 작품 30여점이 내걸렸다. 유명 작가의 작품도 많았기에 혹시나 있을 사고에 대비해 보험에도 가입했다. 전시장을 꾸미고, 대외에 행사를 알리는 일 등 모든 것을 도맡아 진행했다.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뒤 주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도 많이 들었다. 이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앞으로 성경 말씀만 붓글씨로 쓰는 기독 서예가로 살겠다고 다짐한 것도 이때쯤이었다. 교회 장로라는 사람이 세상의 말을 텍스트로 삼아 붓글씨를 쓴다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기독 서예가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셈이다.

80년대는 명성이 쌓이면서 서예 작품을 의뢰하는 주문이 잇따랐던 시기다. 개인전을 열면 작품이 순식간에 팔렸다. 주문이 들어올 경우 성경 말씀만 고집할 수는 없을 때도 있었다. 그때 내가 세운 원칙은 하나였다. 써 달라는 글씨에 ‘술 주(酒)’가 들어가면 절대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서예의 경우 이퇴계나 도연명 등이 쓴 문장을 작품의 텍스트로 삼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엔 ‘술 주’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따르는 크리스천으로서, 교회의 일꾼인 장로로서 이런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 여겼다. 이 원칙만큼은 지금까지도 지키고 있다.

90년대에 들어선 뒤에는 미술선교 활동에 더 매진했다. 92년 어느 봄날이었다. 한국은행에 근무하던 김흥룡 집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만나서 얘기할 것이 있다는 연락이었다.

김 집사와 서울 명동 유네스코회관에서 만났다. 그는 크리스천 예술인들끼리 단체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예총)처럼 기독교 아티스트들이 모이는 ‘기독교 예총’을 설립해 기독교 예술을 세상에 알리고, 이를 통해 복음도 전파하자는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수락했다.

그해 6월 22일 서울 종로구 예총회관 2층 회의실에서 발기인대회가 열렸다. 건축 국악 무용 문학 미술 등 예술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각 분야 기독 예술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나는 서예가를 대표해 이 단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단체 이름은 한국예술인연합선교회. 선교회는 3개월 뒤인 9월 24일 서울 종로구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했다. 하나님을 섬기는 나의 새로운 사역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정리=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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