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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김소엽

[역경의 열매] 김소엽 (15) 초교 5학년 딸 “아빠의 못다한 삶 내가 이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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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뜬 별’은 사실 목숨을 담보로 영감을 받아 쓴 시였다. 나의 이런 경험이 시로 탄생하기까지는 2년여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계속 나만 버림받았다는 느낌과 남편을 떠나보낸 아쉬움에 심한 슬픔과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 어느 날, 딸 서윤이가 학교에서 오더니 강하게 말했다. “엄마, 이젠 그만 슬퍼하세요. 제가 있잖아요. 제가 아빠 뒤를 이어서 교수가 될 테니 저를 미국에 유학보내주세요.”

나는 깜작 놀랐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 5학년인 딸이 그렇게 당돌하고 단호하게 말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린 나이지만 아빠를 잃고 절망에 빠져 허우적대는 엄마를 어떻게든 위로하고 소망을 안겨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내 머릿속에 전기가 확 켜지는 느낌이었다.

‘그렇지. 나에게는 남편이 사랑의 열매로 남겨준 딸이 있지 않은가.’ 비로소 든 생각이었다. ‘그동안 왜 내가 서윤이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 남편을 잃은 슬픔이 너무도 커서 아이조차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남편의 사랑에 빚진 자인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우리 딸을 신앙 안에서 잘 기르는 것이었다. 물론 아이를 기르시고 키우는 분은 하나님이 분명하지만 딸의 교육과 양육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에게 주어진 첫째 임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어린 딸을 홀로 유학 보내는 것은 무리였다. 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하더라도 나중에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를 할 때 보내주겠다.” 혹여 정체성에 혼란을 겪을까 염려됐다. 무엇보다 남편도 옆에 없는데 딸마저 미국으로 떠나보내면 내가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딸의 의지는 단호했고 도저히 그 뜻을 꺾을 수 없었다.

결국 딸은 고1 때 홀로 유학을 떠났다. 때마침 LA 근교에 있는 리버사이드에 큰시숙이 계셔서 그곳으로 보냈다. 그리고 나는 늘 하나님께 서윤이를 지켜달라고 기도했다. 그 시절에는 한시도 기도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다행히 서윤이는 좋은 목사님을 만나 신앙으로 무장된 믿음의 딸로 잘 성장했다. 어린 나이에 유학을 간 서윤이는 외롭고 힘들어 지칠 때마다 찬송과 기도를 하는 충실한 신앙생활로 모든 난관을 극복했다. 지금도 미국에 살고 있는 딸과 수없이 이별과 만남을 반복하며 이런 시를 썼다.

딸에게-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어린 널 홀로 남겨두고

떠나오는 어미 심정은

공중에서

내려다보이는 저 구름바다

첩첩 구름밭을 헤치고

쏟아지는 눈물은 소나기 되어

아마도 태평양이 불었을 게야

눈두덩이 빨갛게 붓고

아린 심장 가슴 녹이며

공중에서 목놓아 부른 하나님은

아마도 더 가까이 계실 거라고 믿으며

열 시간 넘게 기도로 이별을 달랬지

내 인생은 수없는 이별 연습

너와의 인연이 얼마나 소중했으면

나중 진짜 이별 위해

이토록 아린 이별 연습을 하게 하시는 걸까

태평양을 오가며

슬픔과 희망으로 삶을 짜 올린

연민한 내 인생길에서

너는 언제나

아름다운 들꽃으로 피어나

나에게 위안과 안식이 되었지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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