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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김소엽 (11) 예수닮은 남편 좇아 내가 변화되니 세상 행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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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5년은 꿈처럼 행복했다. 그러나 한 남자의 부인이요,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는 데 만족하지 못한 나는 자아실현을 위한 갈망과 영적 고갈상태로 혼란을 겪으며 불만에 휩싸였다. 이때 연세대 신학대학원에 들어가 신학을 공부하면서 종교성과 철학성을 더해 좋은 시를 쓰고 훗날 교수가 되기로 다짐하며 그 힘든 시간을 극복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내가 죄인임을 알고 회개하니 세상이 달라보였다. 꽃들이 웃고 나무들이 춤을 추며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제까지 좀 모자란 듯 보였던 남편이 참 근사해 보였다.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 아니 유아적 신앙을 가진 내게, 또한 미성숙한 인격의 소유자인 내게 그는 너무 과분한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 나의 연약함을 아시고 어쩌면 나에게 모자란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성숙된 인품과 깊은 신앙을 가진 그를 짝지어 주신 게 아닐까. 이 모든 게 하나님 은혜였다.

기적은 죽은 나사로를 무덤에서 살리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장님을 눈뜨게 하는 것만이 아니다. 내가 달라짐으로 세상을 180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바로 그 점이 기독교의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달라지자 평화가 찾아왔다. 방황은 사라지고 남편이 존경스러웠다. 남편의 말에 순종하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내 위주의 삶에서 비로소 남편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배려하기 시작했고, 그의 권고에 따라 성경공부도 했다. 당시 신촌성결교회 홍성철 전도사님이 로마서를 가르쳤는데, 우리는 처음으로 로마서를 배우기 시작했다. 말씀이 꿀송이같이 느껴졌다. 정말 해 아래 의인은 하나도 없지만 하나님 은혜로 우리가 값없이 의롭다 칭함을 받고 의인의 반열에 서게 된 ‘이신칭의’의 장인 로마서를 공부하며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눈을 떠 갔다.

이렇게 내가 변화되니 남편과의 대화가 달라졌다. 단답형의 대화가 영적 대화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주일에 주신 말씀을 어떻게 하면 생활에 한 부분이라도 적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고,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닮아 갈 수 있을까를 의논했으며, 어떻게 하면 교회 중심의 생활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교회에서 30분을 넘지 않은 거리에 있고, 교회 성가대를 초청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은 마루가 있으며, 후에라도 시부모님을 모실 수 있는 평생 살 집을 마련했다.

이러는 동안 남편은 신촌성결교회 장로가 됐고 나는 집사 직분을 받았다. 학교에서는 학생들로부터 존경받는 교수요, 동료간에는 신뢰받는 교수였다. 교회에서는 남녀노소 누구나 예수님 닮은 그의 모습을 좋아했다. 이제 남편을 통해 하나님 뜻을 이루기만 하면 되는 거였다.

이런 시점에서 남편은 미국 프린스턴대 교환교수로 가게 됐고 온 가족이 함께 떠났다. 당시 딸 서윤이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낯선 환경이었지만 6개월이 지나자 귀가 트이면서 제법 미국 환경에 빨리 적응해나갔다.

성실한 남편은 매일 대학 연구실로 출근했고 나는 프린스턴 신학교 기독교교육학과에 수강생으로 등록해 세 식구가 모두 학생 같은 분위기에 젖어 공부했다. 주일에는 대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마침 그곳에 나채운 목사님(후에 장신대 대학원장으로 은퇴)이 설교목사로 잠시 시무할 때였다. 우리는 성가대에 함께 봉사하며 참으로 신앙생활 자체를 즐기면서 지냈다. 그곳 장로님들도 모두 박사님들이었는데, 주일마다 돌아가며 우리 가족을 초청해줘 신앙공동체 속에서 아름다운 교제를 나눴다.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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