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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

나는 왜 시를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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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

나는 왜 시를 쓰는가

- 정호승

유난히 추운 겨울이었다. 한파가 몰아쳐 체감온도가 영하 20도에 가까워진 날, 점심을 먹으려고 추어탕 집을 찾았다. 그 추어탕 집은 출입문 앞에 물이 가득 든 커다란 고무함지에 살아 있는 미꾸라지들을 수십 마리 넣어 오가는 손님들이 볼 수 있도록 해놓았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그곳에 함지가 있었다.

나는 무심코 출입문을 열려고 하다가 함지를 보고 깜짝놀라 발걸음을 멈추었다. 얼음이 꽝꽝 얼어 있는 고무함지속에 미꾸라지들이 그대로 얼어붙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도 얼어붙기 직전까지 살아 움직이던 그대로 다양했다. 어떤 미꾸라지는 몸을 똥그랗게 오므려 이응자 같고, 또 어떤 미꾸라지는 기역자나 니은자 같았다. 이응자를 이루고 있는 미꾸라지 옆에 세로로 길게 몸을 편 미꾸라지를 보자 그들이 마치 ''라는 글자를 쓴 것처럼 느껴졌다.

 쉽게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한참 동안 그들을 보다가 미꾸라지들이 마지막 절명의 순간까지 자기 나름대로의 시를 쓰고 죽었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진정한 시인이라면 삶의 어떠한 순간에도 시를 잃지 않아야 한다.'

얼음 속에 얼어붙은 채 자음과 모음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미꾸라지들의 모습에서 이 시대에 사는 진정한 시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삶이 고통스러울 때마다 시를 쓸 수 없었다. 나의 삶 또한 만남과 헤어짐의 모자이크라는 것을, 인간에게 고통과 시련이란 해가 떠서 지는 일만큼이나 불가피하다는 것을, 불행이 인간을 향한 신의 가장 확실한 표지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게 되기까지 시를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었다.

그동안 내가 쓴 시들은 고통이 잠깐 잠잠해지고 나서 집중해서 쓴 시들이다. 그러다 보니 문예지에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고 한꺼번에 벼락치기하듯 한 권 분량의 시를 써서 급하게 시집을 내곤 했다. 깊은 사색의 사막을 건너지 못하고 자위하듯이 시를 썼으니 그 시들이 오죽하랴. 그동안의 고통을 위로받고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찾다 보니 나로서는 자연히 그런 방법으로 시를 쓸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 스스로 시를 세 번이나 버린 적이 있다. 1982년시집 서울의 예수가 나오고 1987새벽편지가 나올 때까지 5년 동안, 1990별들은 따뜻하다가 나오고1997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가 나올 때까지 7년 동안, 그리고 1999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가 나오고2004이 짧은 시간 동안이 나오기까지 5년 동안 나는 철저하게 시를 버리고 살았다. 단 한 편의 시도 쓰지도 발표하지도 않았다.

 이렇게 등단하고 50여 년 동안 세 차례에 걸려 도합17년 동안이나 시 한 편 쓰지 않고 시를 버리고 살았으나 시는 지금까지도 나를 버리지 않고 있다. 마치 '돌아온 탕자'를 용서하는 아버지처럼 내가 돌아가기만 하면 언제든 따뜻하게 맞이한다.

 이제 시라는 '아버지의 집'을 떠날 생각은 없다. 시가 나를 버려도 내가 시를 열심히 찾아가 효도할 생각이다. 이제야 느린 것은 두렵지 않으나 멈추어 서는 것은 두렵다.

 문득 50여 년 동안이나 시를 쓰면서 이 험난한 세월을 살아올 수 있었다는 사실에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내가 시를 쓰지 않았다면 도대체 무엇을 하면서 살아왔을까. 어디에서 삶의 진정한 기쁨을 얻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에 시를 쓰게 해준 절대자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오랫동안 시인으로서의 길을 걸어온 나 자신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이다.

 나는 예전에도 지금도 '시인'이라는 직함 외엔 아무것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래서 내 이름에 대해서 늘 마음이 편안하다. 내 문학적 인생만은 단순 명쾌하고 홀가분하게 느껴져서 더 좋다. 나는 시인이므로 시만 쓰면 되니까. 또 과거의 시인이 아니고 아직은 현재의 시인이니까.

얼마 전 시선집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냈는데, 그 시선집에 해설을 쓴 김승희시인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정호승은 아주 오래된 시인이자 동시에 아주 새로운 시인이다."

나는 이 말씀 앞에 옷깃을 여몄다. 50여 년 동안 시를 써왔으니 나는 아주 오래된 시인이다. 그러나 아주 새로운 시인은 아니다. 김승희 시인께서 내게 하신 이 말씀은 항상 새로운 시인처럼 시를 쓰라는 우정어린 약이다. 시인은 인간과 자연과 사물을 항상 자기만의 눈으로 새롭게 생각하고 표현해야 하므로 시인으로서의 본질에 더욱 충실하라는 고마운 말씀이다.

시는 돈도 명예도 사랑도 아니다. 시는 살아가는 데는 식량이 되지 못해도 죽어가는 데는 위안이 된다."

내가 경희대 국문학과에 다닐 때 뵈었던 시인 조병화 스승의 말씀이다. 우연히 스승의 산문집에서 읽은 이 말씀이 지금도 가슴에 새겨져 지워지지 않는다. 시가 죽어가는 데에 위안이 되고 도움이 된다는 것,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제 나도 죽음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으므로 스승의 말씀처럼 죽어가는 데에 조금 위안을 얻기 위하여 시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문득 시를 쓰기 시작하던 학창시절을 돌이켜볼 때가 있다. 그리고 그때 시가 무엇인지 알아서 쓴 것일까 하고 생각해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그저 빙긋 웃음만 나온다. 시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썼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시를 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시를 모르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시를 모른다. '모른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고백이다. 때로는 분노보다 상처 때문에, 기쁨보다 슬픔 때문에, 햇빛보다는 그늘 때문에 시를 쓴다고 생각할 때는 있지만 시는 어디까지나 나의 고통일 뿐이다.

산다는 일이 무엇을 이루는 일이 아니듯, 시 또한 무엇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나는 시로서 현실적인 무엇을 이룰 생각은 없다. 그래서 가능한 한 시를 쓸 때 '잘 써야지'하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을 하면 오히려 시가 잘 써지지 않고 시를 망칠 때가 많다. 더구나 인생을 잘 살지도 못하면서 시만 잘 쓸 생각을 하면 그건 잘못이다. 지금 잘 살지 못하는 대로, 시도 지금 잘 쓰지 못하는 대로그냥 둬야 한다. 그래야 시와 나의 관계가 편안해지고 평화로워진다.

시인이 죽으면 대표작 한 편이 남는다고들 한다. 언젠가'대표작으로 남을 시만 먼저 써버리면 더 이상 시를 쓰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건 그렇지 않다. 시인이 한 편의 시를 남기기 위해서는 평생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평생을 바쳐야만 대표작 한 편이 겨우 남는다. 내게 시를 쓸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평생을 바쳐야 한다는 것만은 아직 잊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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