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호승 시인

차나 한 잔

728x90

차나 한잔

      정호승 

입을 없애고 차나 한잔 들어라
눈을 없애고
찻잔에서 우러난 작은 새 한마리
하늘 높이 날아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라
지금까지 곡우를 몇십 년 지나는 동안
찻잎 한번 따본 적 없고
지금까지 우전을 몇천 년 만드는 동안
찻물 한번 끓여본 적 없으니
손을 없애고 외로운 차나 한잔 들어라
발을 없애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
첫눈 내리기를 기다려라
마침내 귀를 없애고
지상에 내리는 마지막 첫눈 소리를 듣다가
홀로 잠들어라

-정호승의 시가 있는 산문집 '고통 없는 사랑은 없다' 중에서

728x90

'정호승 시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왜 시를 쓰는가  (4) 2024.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