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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김소엽 (14) 남편 잃고 찾은 충무 바닷가서 주님은 ‘海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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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항거하며 반역하니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깨지고 어긋나게 됐다. 하나님과 어긋나 버리니 그 자리가 바로 지옥이었다. 살아 있는 것이 고통이고, 하늘을 보기도 땅을 딛기도 부끄러웠다. 그런데 하나님을 부인하니 앞으로 살아갈 날의 시간의 무게가 한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지옥에서는 시간의 무게를 느낀다는 걸 나는 그때 깨달았다. 그러니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워 견딜 수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나도 따라 죽고 싶었다.

가버린 남편을 두고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내 몸이 음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몸은 수척해져갔다. 결국 링거를 꽂고 생명을 이어갔다. 구역 식구들이 잣죽, 깨죽을 들고 왔지만 참담함에 먹을 수 없었다. 장로님, 권사님들이 위로차 찾아오면 정말 만나기 싫었다. 문도 열어주지 않았다. 어머니 같은 이옥희 전도사님도 여러 번 찾아오셨다. 기도도 안 나왔고 찬송도 부를 수 없었다.

알고 보니 우리 신촌성결교회 교우들이 양영재 장로를 살려 달라고 릴레이 철야 기도를 했다고 한다. 더 큰 반항심이 생겼다. 그런 교우들의 기도조차 들어주지 않은 매정하신 하나님, 차라리 무익한 이 여종을 데려가시고 남편을 이 땅에 두어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많은 일을 이루시지, 어떻게 예고도 없이 그를 데려가셨단 말입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고 또 원망하고 분노하고 있었다.

나는 어찌 할 바를 몰라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충무 바닷가 신혼여행지를 찾았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마귀의 속삭임을 들었다. “바다에 빠져 죽으라.” 출렁이는 파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파도가 수없이 일렁이며 밀려오고 밀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왜 바다는 파도를 칠까’란 생각이 들었다. 육지에서 버리는 모든 오물, 폐수, 나의 때를 씻은 물 무엇이든 종국에는 바다로 흘러간다. 그러나 바다는 거부하지 않고 그 모두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바다인 거다. 만약 바다에 해심(海心)이란 게 있다면, 그 더러운 물이 흘러들어 왔을 때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그러나 그 오폐수를 받아들인 바다는 스스로 일렁이고 뒤섞여서 그 더러움을 삭히고 다시 그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 엄연한 진실 앞에서 경성함에 이르렀다.

하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소금, 소금이 되라고 하셨다. 나는 내 앞에 놓인 고난에 대해 화를 내고 거부하고 반항하고 있는데 바다는 묵묵히 그 고통을 인내하며 도리어 고통을 삭혀 소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는 바다만도 못한 존재였다. 내 앞에 놓인 고난에 순종하며 그 고난을 소금으로 만들어내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여기에서 건져올린 시가 바로 ‘바다에 뜬 별’이다. 이 시는 복음성가로 많이 불리기도 했다.

부서져야 하리/ 더 많이/ 부서져야 하리

이생의 욕심이/ 하얗게/ 소금이 될 때까지//

무너져야 하리/ 더 많이/ 무너져야 하리

억만 번 부딪쳐/ 푸른 상처로/ 질펀히 드러눕기까지//

깨져야 하리/ 더 많이/ 깨지고 또 깨어져

자아와 교만과 아집이/ 물보라가 될 때까지//

씻겨야 하리/ 더 많이/ 씻기고 또 씻겨

제 몸 속살까지/ 하늘에/ 비춰야 하리//

그래서 비로소/ 고요해지리/슬픔도 괴롬도/ 씻기고 부서져/ 맑고 깊은/ 바다 되리

그 영혼의 바다에/ 맑고 고운/ 사랑의 별 하나/ 뜨게 하리

정리=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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