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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미션 어워드 시상식 / 김의식 목사 치유하는 교회 / 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 총장
치유하는 교회, 치유상담대학원 대학교 총장 김의식 목사 간증(20) 김의식(오른쪽) 목사가 2020년 서울 강서구 치유하는교회에서 국민일보목회자포럼 대표회장에 취임한 후 직전 대표회장 이철 목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나는 만 20세의 나이에 죽음의 위기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소명을 받은 후 어떠한 인간적인 목표도, 계획도 없이 살아왔다. 그저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하시면 ‘덤으로 사는 인생, 언제든 나의 목숨까지도 바치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십자가의 주님과 맡겨 주신 영혼들만 바라보면서 모든 열정을 쏟으며 달려왔다. 내가 혼신의 열정을 쏟은 곳은 가장 먼저는 치유하는교회의 치유 목회이고, 둘째는 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부설 치유상담연구원)의 치유 강의였으며 셋째는 한국교회와 이민교회와 세계 선교지에 이르기까지 치유 성회를 인도하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엇이 ..
치유하는 교회, 치유상담대학원 대학교 총장 김의식 목사 간증(19) 김의식(오른쪽 두 번째) 목사가 2015년 충북 청주 상당교회에서 열린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제100회 총회에서 부회록서기에 오른 후 임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주님은 나의 목회 여정에 늘 동행해주셨지만 총회에서 임원으로 섬길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큰 은혜였다. 2015년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 제100회 총회장이신 채영남 목사님께서 부족한 종을 부회록서기로 불러주셔서 처음으로 총회 임원으로 섬기게 됐다. 채 목사님은 전에 듣고 알았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성이 깊으셨고 총회 주제인 ‘주여, 화해하게 하소서!’에도 알 수 있듯이 한마디로 ‘화해의 사도’였다. 그래서 총회 안의 화해를 위해 힘썼을 뿐만 아니라 예장합동 총회 임원회와 친교를 시작해 지금까지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치유하는 교회, 치유상담대학원 대학교 총장 김의식 목사 간증(18) 김의식(앞줄 왼쪽 열 번째) 목사가 2019년 서울 강서구 치유하는교회에서 파송 선교사들을 초청해 선교대회를 열고 있다. 나는 치유 목회가 한국교회에 접목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교회마다 크고 작은 불화와 분쟁으로 많은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3년부터 전국 목사·사모 초청 치유 목회 세미나를 시작했다. 또 2년 간격으로 호남 영남 충청 강원 지역에서 농촌 전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지금까지 ‘만(1만명 성도 출석), 천(1000명 사역자 양육), 백(100명 선교사 파송), 십(10개 교회 개척)의 비전’을 따라 교회 개척과 농어촌·도시 미자립 교회 후원을 계속해 왔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영등포노회 동반성장위원장을 6년째 맡으면서 영등포·경서·전서·진주노회의 미자..
치유하는 교회, 치유상담대학원 대학교 총장 김의식 목사 간증(17) 2012년 완공된 서울 강서구 치유하는교회 예배당 전경. 김의식 목사는 전 세대에 치유 목회를 접목해 교회 부흥을 일궜다. 10년의 영적 전쟁 속에서도 교회는 기적적으로 부흥해 성도 수가 갑절에 이르렀다. 당시 700석의 예배당과 300석의 소예배실로는 주일 5부 예배까지 드려도 성도들의 수용이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예배당 건축 후 30년이 지나서 교회당 건물이 낙후돼 비가 오면 누수 현상이 있었고 지하 교육관에는 곰팡이까지 생겼다. 그래서 당회에서 만장일치로 새 예배당 건축을 결의하고 교회 옆의 주택까지 매입했다. 2010년부터 2년 6개월에 걸쳐 현재의 지상 6층, 지하 3층 예배당을 지었다. 2500석의 글로리아채플, 700석의 힐링채플, 8개의 교육실, 찬양대실, 위임목사실, 은퇴목사·장로실, ..
치유하는 교회, 치유상담대학원 대학교 총장 김의식 목사 간증(16) 김의식(오른쪽) 목사가 2015년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영등포노회에서 김학만 원로목사를 노회 공로목사로 추대하고 있다. 화곡동교회 전임 목사님이신 김학만 목사님은 은퇴 후 김포로 가셔서 말씀교회를 개척하셨는데 말씀교회는 독립 교단에 속해 있었다. 그런데 평생을 우리 화곡동교회와 영등포노회, 총회를 위해 헌신한 목사님이 은퇴하신 후 독립 교회를 세웠다는 것이 목사 면직 사유가 됐다. 김 목사님이 그렇게 수모를 겪으시는데도 나는 도와드릴 수 있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그래서 묵묵히 인내하며 회복의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부족한 종이 2008년 영등포노회 부회록서기가 됐다. 나는 노회에 면직된 김 목사님을 복직시켜 달라고 요청했고 김성규 목사님이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셔서 김규 목사님이 노회장이실 때 가..
치유하는 교회, 치유상담대학원 대학교 총장 김의식 목사 간증(15) 김의식(앞줄 왼쪽 여섯 번째) 목사가 인천 강화군 계명수련원에서 치유동산 프로그램 참가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치유동산은 성도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행복한 관계를 회복시키는 교회 프로그램이다. 심근경색의 위기에서 주님의 은혜로 살아난 후, 계속되는 영적 전쟁에서 받는 온갖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주님께서 부족한 종에게 지혜를 주셨다. 새벽기도를 할 때마다 가장 먼저는 통회와 자복부터 하게 하셨다. 그래서 문제의 원인을 가장 먼저 주의 종인 나 자신에게서 찾게 하셨다. 그다음으로는 교회의 갖가지 문제를 안고 해결을 위한 기도제목들을 구체적으로 간구하게 하셨다. 더 나아가 깊은 감사를 하게 하셨다. 그렇게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목회였지만 뜻을 함께하며 싸워 주는 동역자들과 장로 권사 집사 성도들 등..
치유하는 교회, 치유상담대학원 대학교 총장 김의식 목사 간증 (14) 화곡동교회는 10여년에 걸친 분쟁을 그치고 부흥을 거듭한 끝에 2012년 새 예배당을 짓고 입당했다. 이름도 현재의 치유하는교회로 바꿨다. 글로리아채플에서 성도들이 예배하는 모습. 화곡동교회의 분쟁은 갈수록 더욱 심해지며 끝이 보이질 않았다. 교회뿐만 아니라 노회 수습전권위원회와 관계도 점점 악화했다. 수습전권위원회 부위원장 목사님이 수습을 전제로 각서를 쓰라고 해서 쓰면, 위원장 목사님이 반대하셨는지 그 후에는 각서 내용을 지키기가 어렵다고 하셨다. 억울하고 원통한 일은 끝이 없었다. 그중에 가장 눈물 나는 일은 수습전권위원회가 불러서 갔다가 위원장 목사님이 노회를 탈퇴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면서 3시간 반 동안 온갖 욕설을 쏟아놓았던 일이다. 노회 탈퇴는 우리 교회의 마지막 투쟁 카드였기에 각서를 ..